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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문] 돌아온 탕자로 하나님 앞에 서서
기사입력: 2022/01/09 [11:21] 동네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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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석풍[木花石風]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업 아이템을 결정하기 위해 선배들도 만나고 또 거래관계로 알고 지내던 분들도 만나 많은 조언을 구했다. 고심을 거듭한 끝에 의류 유통업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2000년 봄 대전으로 내려가 가게 터를 잡고 사무실 겸 창고도 얻어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 시작하는 일이기에 많은 문제와 어려움이 있었지만 젊고 혈기가 있어 추진력도 있고 자신감도 있어 문제를 정면 돌파하며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이후 사업은 계속 번창하고 확장 일로를 걷고 있었다. 문제는 여기부터 발생되기 시작했다. 매일 일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술을 많이 마시기 시작한 것이다. 술 습관이 좋지 않아 폭음을 하게 되고 횟수도 늘다보니 건강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내는 매일 술에 취해 사는 남편이 걱정되어 매장에 단골로 오시는 손님 중에 교회 사모님이 계셨는데 그 사모님께 우리 남편 교회에 나가면 술 안마시게 될까요라고 얘기를 했던 모양이다. 그때 사모님께서 목사님과 한번 만나 보는 게 좋겠다고 하셨고 아내는 내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나는 그래 한번 만나보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해서 이고선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다. 칼국수 집에서 점심을 먹으며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사업하는 얘기 등을 진솔하게 나누었다. 대화 중에 나의 영혼이 지쳐가고 있음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목사님과 교회에 한 번 나가겠다고 약속하고 헤어졌지만 약속대로 교회에 나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한 달 두 달이 지나간 것 같다. 목사님은 자주 전화를 하셨고 인심 쓰듯 못이기는 척 하면서 주일예배에 처음 나가게 되었다. 대전서문침례교회, 상가건물 반지하의 개척교회였는데 일곱 가정이 목사님 가족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목사님은 열정에 넘쳐 설교 하셨고 다들 열의가 넘쳐 보였다. 다음 주에도 나오마 하며 예배 끝나기가 무섭게 돌아왔다. 그렇게 해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 하였다. 원래 거절을 잘 못하고 약속을 하면 지켜야 하는 성격이었기에 나가게 된 것 같다. 목사님과 교회 식구들의 애정 어린 관심 속에 계속 출석하게 되었다.

 

나는 수원에 있는 유신고등학교를 나왔는데 그 학교가 기독교 학교였기 때문에 1주일에 한 번 채플이 있어 예배를 드렸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존재 하는지 어떤 분인지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군대에서도 간간히 주일에 교회에 나가 보기는 했지만 믿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름 종교라는 지식수준에서 이해하려고 했고 그러기 위해서 신약성경을 두서너 차례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교회에서 부흥집회가 있었는데 원주제일교회 김형윤 목사님이 부흥강사로 오셔서 1주일간 집회를 하게 되었다. 조그만 개척교회에서 큰 행사를 하다보니 교회 식구들 모두가 합심하여 준비하였다. 나도 초신자였지만 이번 기회에 무언가 은혜를 좀 받아봐야겠다 하는 정도로 참여하게 되었다.

 

집회가 시작되면서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서 내 안에서 무언가 큰소리로 외쳐대는 것이 있음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시간이 거듭되고 설교를 더 들으면서 마음으로부터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내가 교회에 다니는 것은 교회에 적선을 하는 것도 잘난 체 하려고 나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 깨달아지기 시작하였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왜 이 땅에 오셨는지 마음속에서 부터 뜨거워지며 깨달아지기 시작하였다. 그분의 존재가 믿어지기 시작하였다. 집회가 끝날 즈음에는 나도 앞으로 제대로 한 번 믿어보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교회는 예배 보러 오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를 드리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생초보인 내가 변화되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집회가 끝날 즈음 김 목사님은 우리에게 40일 작정기도를 권고하셨다. 그렇게 성도들이 40일 특별 새벽기도를 시작하였다. 나도 적극 동참하겠다는 각오로 술도 끊고 새벽기도에 나가기 시작하였다. 누군가 초신자의 기도는 하나님이 다 들어 주신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이 있었다.

 

나는 기도의 기본도 잘 모르면서 이상하게도 나에게 믿음 주세요”, “반석 위에 세워진 믿음 주세요라고 기도하였다. 지금 생각해도 초신자가 엉뚱하게 차원 높은 기도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40일 작정 새벽기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녔다. 흔히들 성령체험이라는 것도 하게 되고 날로 더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려는 믿음의 성장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신앙생활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면서 영성은 조금씩 좋아지구 있구나 하면서도 세속적인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고질적인 문제인 술이었다. 사업을 이유로 거래처와의 관계, 인간관계 등 항상 등장하는 것이 술이었다. 그렇게 술의 문제를 단호히 해결하지 못하니 예전 습관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사업은 계속 확장되어 체인점이 40여 개로 늘어났다. 바쁘다보니 교회도 소홀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다보니 교회에 나가는 것도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한번 두 번 빠지기 시작한다. 예배를 한두 번 빠지면 그만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핑계를 찾아 교회를 안 간다. 그렇게 해서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음주사고를 냈다. 사고가 크게 나서 차는 대파大破되었는데 가해자인 나도 피해자도 크게 다친 곳이 없었다. 이런 사고가 나면 바로 교회로 달려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하는데 사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오히려 피해자가 교회 집사님인데 합의금을 무리하게 요구한다고 어떻게 교회 다니는 분이 그럴수 있느냐 원망하며 더더욱 교회에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가 없다.

 

이후 교회 식구들의 많은 기도 속에 회개하고 다시 교회로 돌아왔다. 교회는 계속 성장하여 새로 성전을 건축하게 되었고 나의 믿음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앙생활은 아니었다. 사업이 문제요 술이 문제인 것이었다. 교회에 나가서 기도할 때는 제발 술 좀 끊게 해 주세요한다. 그러나 사람을 만나면 술이 있어야 문제가 해결되니까 하면서 술을 마셨던 것이다. 편한 대로 신앙생활을 한 것이다. 이렇게 신앙생활 하는 것은 지금 돌이켜 보니까 믿음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과 나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여져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좀 멀어지는 듯 하면 살짝 끈을 당겨 다시금 가까이 오게 하셨고 그럴 때는 어이쿠 하나님 죄송합니다회개하고 하나님 곁에 있는 척 하다가 다시 내 길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기를 반복하며 살았던 것 같다.

 

대전에서 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고향 화성으로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사업이 어려워진 것도 있었지만 부모님께서도 장남인 내가 당신들 곁에 있기를 바라셨기 때문이었다. 이고선 목사님께 이런 사정을 말씀 드리고 앞으로도 신앙생활은 잘하겠다고 다짐 드리며 2007년 화성으로 올라왔다. 발안으로 올라와 사업을 시작하고 분주하게 생활하면서도 앞으로 어느 교회를 다녀야 할지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었다. 2의 신앙생활 출발할 교회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임마누엘교회를 소개받고 등록하게 되었다. 비록 조그만 시골교회요, 출석인원도 많지 않은 교회이지만 기도하는 교회여서 좋았다. 정인천 목사님 인도에 성도들의 한결같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다운 교회이다.

 

그간 옛 습관 때문에 많은 고난도 있었고 어려움도 있었지만 이제는 온전히 주님을 알고 깨닫고 믿는 믿음으로 성장하는 신앙생활 하겠다고 다짐하였다. 대전에서 신앙생활 할 때는 아내가 교회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하고만 다녔는데 발안에서 아내가 교회에 다니게 되니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새벽기도를 다니면서 기도응답 받은 것은 수도 없이 많았던 것 같다. 그렇게 교회에 다니면서 시골 아버지 건강이 점차 나빠지기 시작하여 현재 살고 있는 고향집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교회도 마을에 있는 교회로 옮기게 되었다. 아내와 같이 가정예배 드리며 식당을 하기 위해 참으로 간절히 기도하였다. 식당을 해본 적이 없으니 메뉴를 놓고 기도도 많이 했고 주택에서 근린시설로 용도 변경하는 과정에서 100년이 넘은 집이니 설계도면을 새로 그려 허가를 들어가 반려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안 될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이 확신을 같고 기도하니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응답되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현재 출석교회는 봉담 선한목자교회에 다니고 있는데 나에게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이런 거구나 깨닫게 하는 교회다. 우리 교회는 20202월 창립하였다. 코로나가 시작되는 시점에 교회가 창립한 것이다. 어렵게 시작했지만 박대열 목사님과 기도하며 많은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특히, 나는 202010월 절대로 끊지 못할 것 같던 술을 끊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나를 너무나 사랑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절절히 느낀다.

 

오늘 이렇게 간증문을 쓰면서 신앙생활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고 있는데 새삼 마음에 감동이 밀려온다. 왜냐하면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존재요 죄인인 나같은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버리시지 않고 붙잡아 주셨기 때문이다. 넘어졌을 때 일으켜 세워주시고 실망하고 있을 때 앞길에 빛이 되어 용기를 백배내게 해주셨기 때문이다.

 

나에게 일어난 어떤 사건이나 사고가 지나고 나서 보니까 하나님이 무언가 나에게 메시지를 보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뒤늦게 깨닫고 감사하게 된다. 이제는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고자 하시는가 그 음성에 귀기울이게 된다. 봉담 선한목자교회에서 그런 믿음으로 성장하게 되어 감사하다.

 

아직 나는 배고픔을 느낀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음 같이 갈급한 심정으로 주님을 찾는다. 세상에 말로 다 표현 못하는 것들이 있다. 나에게 하나님이 주시고 있는 사랑에 감격해서 밖으로 뛰어나가 마구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다.

 

나는 돌아온 탕자로 하나님 앞에 서있다.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는 완전한 실패자로서 서있다. 술에 취해서 살아온 삶, 인생의 1/3를 허비한 것 같고 부모, 형제, 친구들에게 존경 받을 모습은 하나도 없는 모습으로 서있다. 모든 것이 아쉽다.

 

하지만 하나님은 돌아온 나만 바라보고 계심을 느낀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따뜻한 시선으로 보며 나를 감싸 안아주심을 느낀다. 2022년 새해에는 새로운 각오로 신앙생활을 해보고자 다짐한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 보고자 한다.

 

202216 숙곡리 사랑방에서

▲ 글쓴이 목화석풍[木花石風]은 향토시인으로 2020년 늦여름이던가 금주 선언 후 현재를 살고 있으나 한때는 경악(?)할 정도의 말술 애주가였다. 잠시나마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인연으로 당시 반복하던 주사(酒邪)라고 해야 하나? 취기를 빌려 얼큰하게 쏴주던 애송시가 있었으니 김소월의 ‘산유화’였다. 이 섹션은 그런 그가 들려주는 일상의 산유화 버전 ‘자소서’다. 주제/소재 가리지 않고, 장르 구분 없이 장강을 이루는 연작에 쫑긋 눈ㆍ귀를 세운다    ©동네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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