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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ㆍ멍’ 숙곡리 온돌 송년회
기사입력: 2022/12/30 [18:26] 동네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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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석풍[木花石風]

▲덕리 아지트 1번 하우스 내부  © 동네정치



공간멍 식구들이 송년회로 모였다. 봉담읍 덕리 쉼터를 함께 만들고 가꾸는 멤버들이다. 식구가 되기 위해서는 첫째 전제조건이 먹는 행위가 있어야 하고 둘째 일상적으로 얼굴을 볼 수 있는 관계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 두 가지를 상시 충족하는 멤버들이 공간멍에 있고 15명에 이른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송년행사는 무슨 먹거리인지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먹거리가 있어야 한다. 00 형님은 진작 아귀찜을 내겠다고 예고했고, 거기에 추사는 장어를 대접하겠다고 한다. 그렇게 준비된 먹거리가 숙곡리 온돌 사랑방에 펼쳐진다.

지난 22일 저녁 6시 카톡에 모임 시간을 사전 공지했다. 온돌방을 뜨근뜨근하게 달궈놔야 할 임무는 추사 남편에게 있다. 오후 5시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한 개비 한 개비 나뭇조각을 밀어넣는다. 아랫목에 앉아 온돌방 진가를 엉덩이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많은 나뭇개비가 아궁이로 들어간다.

추사와 지프(Good friend)로 호칭하는 유00 여사님이 감귤단감을 들고 먼저 도착한다. 상차림 세팅을 위해 일찍 오셨다. 아궁이에 불꽃이 활활 일어나는 시간, 테이블에는 장어구이 준비와 함께 이것저것 밑반찬이 진열돼 간다. 주방에서는 저녁식사로 먹을 차돌박이 된장찌개를 박호 작가가 평소 실력(된장찌개 명인?)으로 끓인다. 준비가 어느 정도 돼가니 성원이 되길 기다리면 된다.

오늘 송년회에 모이는 공간멍 식구들은 이미 오래 전 공간멍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각자 친분 관계로 교류가 있던 인연들이다. 단편적 사건들을 잘 엮어 서사를 만들 듯 구심점이신 윤00 교수님(개인적으로 아는 만큼 굳이 설명하자면 이 분은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고 최근 정년퇴직하셨다 이후 화성시 관련 영역에서 재능기부를 하고 계시다 편집자) 의 배려와 역할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사랑방 모임이다. 시간이 지나 교제를 펼치는 무대가 숙곡리에서 덕리로 옮겨져 공간멍으로 자리 잡았다.

덕리 440평 놀이터를 만들고 가꾸면서 농장 명칭을 어떻게 할까 논의한 끝에 공간멍으로 결정했다. 서봉산 입구에 자리한 공간멍에는 3동의 비닐하우스가 조성됐다. 1번 동으로 칭하는 농장 입구 첫 번째 동에는 교수님의 식물 사랑이 녹아들었다. 하우스에 오신 모든 인연이 탄성을 지른다. ‘너무 예뻐요’, ‘너무 좋아요그런 공간이 있어서 모두가 행복하다.

또 하우스 입구를 장식하는 화분나무조형물이 적절히 조화돼 등산인들 시선이 머물곤 하는 곳이다. 대체로 의문을 제기하며 추측성 대화를 나눈다. ‘카페가 아닐까?’라는 음성이 주된 의견들이다. 카페는 아니지만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공간이다. 특히나 하릴없이 멍 때리며 앉아 있으면 되는 공간이다.

우리 모임의 유대감은 공간멍으로 더 강화됐다. 발길을 하는 과정과 손길이 스치는 과정 속에서 대화는 평화롭고 안정적이다. 치열하게 삶의 현장에서 보낸 시간과 공간멍에서 여유롭게 보내는 시간은 보색대비로 구분돼 공간멍은 더더욱 여유롭고 편안한 공간이다.

00 형님이 우리 부부가 좋아한다고 광어회를 사오셨다. 내외가 맛있게 먹으란다. 감사하다고 인사한다. 곧이어 양00 형님의 아귀찜이 도착한다. 이미 도착한 몇 분이 장어를 굽고 술잔을 한 잔하는 타이밍이다. 아귀찜과 장어구이가 푸짐하게 맛있다. 성원이 되어 교수님께서 자리를 안정시키는 멘트를 하신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에 공간멍 식구들이 함께 자리한 이시간이 있어서 좋네요라며 건배 제안을 하고 건배사는 양00 형님이 하신다. “모두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건배사는 건강을 기원하는 모두의 바람을 담고 있어 좋다.

잠시 후 최00 회장 내외분이 입장하신다. 회사에서 외국인 근로자 숙소 문제로 늦었다고 하신다. 들어오는 손에 와인 박스가 들려있다. 과거에는 양주병을 들고 오는 손이 많았다. 이제는 와인 애호가가 많아져 와인 선물이 오히려 반갑다.

풍천장어의 두툼한 식감과 아귀찜의 매콤함이 조화된 송년은 입도 즐겁고 기분도 좋다. 교수님께서 돌아가며 한 해의 소감을 얘기하는 게 좋겠다고 하면서 1번으로 나를 지목하신다. 헤럴드경제 주관 2022년 공익대상 수상을 축하한다며 한 마디 하라는 것이다. 나는 공간멍 식구들의 사랑과 응원에 깊이 감사드린다. 앞으로 공간멍 에 좀 더 관심을 갖겠다며 소감스럽지 않은 마무리 발언을 한다.

▲ 덕리 아지트 1번 하우스 입구  © 동네정치

 

이어 시계방향으로 일어나 한 해의 소회를 말한다.

나의 아내 추사는 공간멍 을 사랑한다. 모든 식구들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이어 우리 부부 회갑여행 때 불러 멍 식구들에게 반향을 일으킨 보약 같은 친구를 모두 노래로 청한다. 아내는 청에 용기를 내어 노래한다. 그러나 여행 때 받은 느낌과는 좀 다른 맛이다.

00 작가 차례다. 공간멍은 박 작가의 노고가 있었기에 만들어진 공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비닐하우스 시설부터 모든 것이 그의 손을 거쳤다. 그의 손이 닿은 모든 것이 기능과 편리를 모두 소화시킨 작품들이다. 모두 박수를 치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모두를 행복하게 하겠습니다. 한 해가 책 한권 쓸 사연이 있었습니다”. 이어 노래를 청하니 천년지기를 부른다. “내가 지쳐 있을 때 내가 울고 있을 때 위로가 되어준 친구 너는 나의 친구야~” 우리 모두 천년지기를 소망한다. 00 형님이 혈액형이 어떻게 되느냐 물으니 남들이 박형이라 부른다고 한다. 박 작가의 순발력 있는 조크가 우리를 즐겁게 한다.

00 회장님이 인사말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선다. “어떤 길을 선택하는가, 그 길을 어떻게 갈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말씀에 힘이 있다. 최 회장님은 나훈아팬클럽 나사모열혈 회원이다. 20년 이상 팬클럽 활동을 하면서 나훈아 사랑과 전도에 열을 올리시는 열성 왕팬이다. 부부 간인 허 여사도 나훈아 사랑이 각별한 분이다.

지난번 모임 때 최 회장님 순애보를 짧게 얘기하셨는데 안양 사는 예쁜 아가씨 사랑을 구하고자 엄청 노력했다는 얘기에 걸맞게 원앙이다. 노래를 청하니 나훈아의 신곡 맞짱을 들려주신다. ‘세월을 이길 장사 어디 있겠소 어느 누가 세월을 막을 수 있겠소~ 아아아 세월아 맞짱 한번 뜨고 싶다 아아 웃프다 인생아인생의 쉬 지나감을 아쉬워하며 경상도 사나이 버전으로 노래하신다.

오늘 선물로 가져오신 와인, 모두들 기분 좋게 받아드는 모습이 보기 좋다. 움직이는 백과사전 최 회장님 언제 나훈아 콘서트에 멍식구들 모두 함께 가자구 말씀드리고 싶다.

찰리박 박00 형님은 서로 사랑하는 공간멍 식구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는 멘트와 함께 부르시는 노래는 추억의 푸른 언덕’. 태진아의 데뷔곡을 이상열 버전으로 부른다. 해병대 기상이 넘치시는 분이신데 노래는 감미롭고 부드럽다. 가수 빰 치는 고수들이 우리 멍식구인 게 너무 좋다. 공간멍에 말없이 수고로운 일들을 하시는 모습에 우리 모두 감사드린다.

 

▲ '내 사랑 내 곁에'의 가수 고 김현식과 막역지우로 지냈던 양0훈 형님  © 동네정치

 

00 형님의 모두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짧은 소회가 오히려 공감이 된다. 우리 사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여행을 좋아하시는 형님은 지난 여름 태국에서 두 달 이상을 여행하고 왔다. 통풍이 있어 고생하는 것 말고는 건강한 분이다. 형님은 고 김현식과 막역지우(莫逆之友)셨다. 지난달 고 김현식 32주기에 고인 묘에 추모하러 가서 소주 한 잔 따라놓고 옛 생각에 잠겼다는 얘기를 하는데 깊은 우정을 느끼게 했다. 노래는 내 사랑 내 곁에형님도 우리 곁에 항상 함께 하시길 바란다.

00 여사님은 잘 어울리는 스카프로 인사를 받고 웃음으로 한 마디 갈음한다. 공간멍 살림꾼이라 말하면 실례가 되실는지. 궂은 일 마다 않고 말없이 해내는 희생으로 공간멍이 숨을 쉰다.

00 선생님은 911테러 당시 마지막 문자 메시지로 남긴 것이 대부분 사랑하고, 미안해였다 운을 떼면서 사랑합니다로 마무리하신다. 박 작가가 미용실 다녀온 포스로 노래 한 곡 부탁한다고 하니 내년 125일 보너스 타면 노래방을 내가 확실히 쏜다면서 마음에 쓰는 편지로 우리들 마음을 달달하게 바꿔 놓는다.

00 형님은 연초 멍 농장에 일손 거들러 오던 길에 가볍게 미끄러져 넘어졌는데 갈비뼈가 골절되는 기막힌 일을 겪은 얘기부터 시작한다. “시간이 더디게 지나가는 것에 감사한다는 말은 갈비뼈가 빨리 낳지 않는 것에 대한 우회적 감회를 표현한 말이다. 18번곡 용두산 엘레지를 부른다. 오늘 함께 오지 못한 부인 유00 여사를 애타게 부르듯 용두산아를 불러 젖힌다.

00 여사는 친구들과 기차여행을 다녀오고 몸살이 나 오늘 참석을 못하셨다. 여행을 하려면 이렇게 몸살날 정도로 화끈하게 하셔야 추억에 남는 것 아니겠나. 신년에 함께 기차여행을 하자는 의견이 모아졌고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다. 00 ! 신년 농사에는 땅콩을 껍질째 심어(땅콩은 겉껍질을 제거하고 심어야 함) 모두를 웃기게 하는 코미디로 한 번 더 즐겁게 해주시길

00 시인은 현재 공간멍의 막내다. 0.1톤에 육박하는 거구임에도 재주가 남다르다. “나이 얘기하기 미안하지만 나도 나이를 먹었다”. 아마도 육십을 향해 가는 세월이 야속하단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00 시인의 시세계는 독특하게 정결하다. 그는 우리 공간멍의 보배 같은 존재다. 지난 1023일 공간멍에서 제1회 가을 음악축제를 열었는데, 음악회를 기획하고 진행 일체를 주관하며 마무리할 수 있도록 했다. 내년 가을 음악회도 기대된다. 배호 노래를 청하니 마지막 잎새를 부른다. 중저음으로 부르는 노래는 생전 배호를 다시 보는 듯하다.

00가 일어선다. “서로에게 불 꽃 같은 우정을 나누면 좋겠다는 그의 말에 청춘별곡을 듣는 듯 열정이 생긴다. 목요일은 근무하는 날인데 장어 먹으러 간다고 하니 동료들이 대체 근무를 서고 보내줬단다. 00는 올해 라이센스 2개를 취득한 사람이다. 모두 어렵다고 하는 나무의사 자격증과 문화재 관리사 자격증을 딴 것이다.

우리 멍식구들은 나름 자기 일가를 이루는 사람들이다. 00도 올해는 아주 의미 있게 보낸 한 해일 것이다. 노래는 윤중호의 야화. 이 밤에 잘 어울리는 곡이다.

뒤늦게 박00 장로가 지각 입장이다. 바쁜 일상을 보내는 분인데 멍식구들과 함께하고자 서둘러 일을 마치고 오신 것이다. 우리 모두 박수로 환영한다.

교수님께서 우리 멍식구들을 위해 포인세티아을 준비하셨다. 모두 하나씩 받아들고 환하게 웃는다. 교수님은 우리들의 정신적 지주로 무게감이 있는 분이신데 함께하는 자리가 너무 좋으신지 연신 웃음으로 자리를 따뜻하게 하신다.

작년 송년회와 올해 송년회의 차이가 있다면 식구가 더 늘었다는 것이고 나이가 한 살 더 먹었다는 것뿐이지만 우리의 우정은 더 깊어지고 있는 것 같아 흐뭇하다. 우리 공간멍 식구들 뫼비우스의 띠 같은 영원한 우정이 계속되기를 희망한다.

 

20221228

 

▲ 글쓴이 목화석풍[木花石風]은 향토시인으로 2020년 늦여름이던가 금주 선언 후 현재를 살고 있으나 한때는 경악(?)할 정도의 말술 애주가였다. 잠시나마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인연으로 당시 반복하던 주사(酒邪)라고 해야 하나? 취기를 빌려 얼큰하게 쏴주던 애송시가 있었으니 김소월의 ‘산유화’였다. 이 섹션은 그런 그가 들려주는 일상의 산유화 버전 ‘자소서’다. 주제/소재 가리지 않고, 장르 구분 없이 장강을 이루는 연작에 쫑긋 눈ㆍ귀를 세운다  ©동네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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